20년을 함께한 반려견의 안락사 - 병든 노령견과 함께한다는 것

    반려견 안락사.. 결정은 내가 해야 했다.

    이미 알고 있었다. 아이는 이미 한계가 왔다는 걸.. 하지만 안락사 당일까지도 난 마음을 결정하지 못했다. 내가 15살부터 35살이 된 지금까지 함께한 이 아이를 너무 사랑했고, 자식처럼 아꼈기에 쉽게 결정 내릴 수 없었다.
     
    6월 22일 월요일, 본가에 있는 꼬뉴의 상태가 좋지 못하다는 어머니의 연락을 받았다. 이제 밥을 먹이기 너무 어렵다는 것이었다. 자주 받던 내용의 연락이었지만 그날따라 느낌이 사뭇 달랐다. 결정을 내릴 시기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포함한 가족들은 이미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서로를 위해 이제 이별해야 한다는 걸.. 어머니께 조만간 찾아가겠다 얘기하고 전화를 끊었다.
     

    고통스러워 하는 꼬뉴 (안락사 2주 전)

    6월 28일 일요일, 본가에 도착해 꼬뉴를 보고 억장이 무너지는 것만 같았다. 안 그래도 좋지 않던 아이의 몰골이 더 심각해져 있었다. 항상 얼굴 한쪽면을 바닥에 비비며 발버둥 쳤기 때문에 반쯤 짓물러 있었고, 그쪽면의 눈 역시 반쯤 찌그러져 있었다.(위 사진은 2주 전 상태가 좀 나았던 때의 사진) 나중에 어머니께 듣기로, 이 날 꼬뉴의 눈에서 각막 같은 것이 떨어져 나왔다고 했다. 내가 충격받을 것 같아 당일엔 얘기하지 못하셨다 했다.
     
    조금 더 과거인 6월 둘째 주에 일주일간 나의 집에 머물렀던 때의 모습을 생각하면, 지금 상태는 보름 남짓한 시간 동안 너무 급속도로 나빠진 것이었다. 꼬뉴의 상태가 파악되자, 바로 마음을 다잡고 안락사 방법과 화장터, 장례식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날 저녁 꼬뉴는 바로 안락사되었고 화장과 장례까지 진행되었다.
     
    사실 그동안 나는 마음의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했다. 아이가 자연사로 삶을 마감하길 바랬지만, 그건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안락사를 하는 것이 과연 아이가 원하는 것인지 판단할 수 없었다. 강제 급여였지만 그동안 습식 사료와 물을 잘 삼켰으며, 발작을 멈추고 몇 시간 동안이나마 잠이 들어 평온해 보이는 얼굴은 감히 안락사를 머리에 떠올리지 못하게 했다. 아니, 떠올리기 싫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거다. 강아지가 말을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생각하는 건 의미 없는 일이지만, 나는 수십 번씩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하지만 불가능 하단 걸 알기에 결국 난 결정을 해야만 했다.


    안락사 참관은 신중하게..

    안락사를 알아봐 둔 병원에 도착해서 꼬뉴를 안고 어머니는 슬피 우셨다. 그리고 차마 참관은 못하겠다 하셨다. 나는 어머니께 꼬뉴를 넘겨받은 뒤 선생님이 가르키는 얇은 천으로 덮인 딱딱한 탁자 위에 녀석을 올려두었다. 그리고 안락사 진행이 어떻게 되는지 물었다. 선생님은 우선 마취 주사 후, 심장을 멈추게 하는 주사를 추가로 한번 더 주입한다고 하셨다. 나는 고통이 없는지 선생님께 재차 물었고, 선생님은 깊게 생각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이 진행 방식이 다른 안락사 방식과 차이가 없다는 걸 선생님께 확인받은 뒤, 고개를 끄덕이며 진행해달라 말했다.
     
    마취 주사를 맞은 녀석은 전신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하지만 아직 살아있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은 진행이 급하지 않았고, 침착하게 기다려주셨다. 나는 꼬뉴를 내 품에 안고 있는 상태에서 심장이 멈추게 하는 주사를 놓을 수 있는지 선생님께 물었지만, 그건 어렵다 하셨다. 딱딱한 탁자 위에 누워있는 아이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몸을 잡고 쓰다듬어 주는 것뿐이었다.
     

    건강했을 마지막 즈음의 사진 속 꼬뉴(우측)

    이내, 주사 바늘이 꼬뉴의 목 부위에 들어갔다. 피가 역류하며 주사기의 약물에 섞이는 게 보였다. 꼬뉴의 전신은 마취되었을 테지만 떨림이 느껴졌다. 곧 아이는 숨을 아주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면서 가슴이 부풀었다. 그렇게 두 번 숨을 크게 쉰 뒤 심장이 멈췄다. 5초 내외의 아주 짧은 시간이었다. 지금도 손에 감각이 남아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그리고 생명이 꺼졌다는 것을 실감했을 때, 난 오열했다. 처음이었다. 내게 아주 소중한 존재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본 것은.. 그리고 상실감 또한 마찬가지로.


    강아지 안락사의 트라우마 - 펫로스 증후군.

    반려견의 안락사를 준비하는 사람에겐 두 가지 선택이 있다. 안락사를 참관하거나, 그렇지 않거나. 나는 꼬뉴가 생을 마감하는 순간에 내가 함께이길 바랬다. 그게 자연사였다면 좋았겠지만, 안락사여도 생각은 다르지 않았다. 아이를 위해서 떠나는 순간에 함께하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트라우마가 너무 깊이 남은 모양이었다. 난 그날 밤 장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잠을 청하던 와중에 침대에서 다시 한번 오열했고, 감정이 격해진 나머지 손발이 마비되고 떨리는 발작이 찾아왔다. 얼굴 입 주변까지 마비되는 느낌을 느꼈을 때, 와이프가 호출한 119 구급대 응급차에 실려갔다. 나는 한 번도 발작을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다행히 정신적인 충격에 일시적 쇼크가 온 것뿐이었고, 안정을 취한 뒤 곧바로 퇴원할 수 있었다.
     
    반려견이 소중했던 만큼 안락사 참관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결정은 쉽지 않겠지만, 자신이 참관 과정을 감내할 수 있는지 꼭 생각하고 결정해야 한다. 평생의 트라우마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난 아직도 심장이 멈출 때 손의 감촉과 그 고통스러운 감정을 잊지 못한다. 무엇이 좋은 선택인지 권하지 않겠다. 그건 개인의 선택 영역이기 때문에..


    어떤 선택이든 후회는 남는다.

    오랜 시간 함께해온 반려견을 떠나보내는 일에, 어떤 선택이든 후회는 남을 수밖에 없다. 내가 당일 아이의 처참한 몰골을 보고 바로 안락사를 진행했든, 일주일, 아니 단 하루라도 더 곁에서 보내고 안락사를 했든, 이르면 이른 대로 "아, 하루만 더 같이 보낼걸"이라는 후회를. 늦으면 늦는 대로 "내 욕심에 아이를 더 고통스럽게 하는 건 아닌지" 후회를.. 하게 되는 것이다.

    휠체어를 탄 꼬뉴

    그날 아이의 짓무른 얼굴에 충격을 받고 "하루라도 빨리 보내는 것이 꼬뉴를 위한 것" 또는 "그동안 나를 포함한 가족들이 우유부단해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아이를 고통스럽게 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혔고, 그날 바로 화장과 장례까지 진행했지만,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깊은 상실감에 절망했다. "하루만 더 내 품에 안고 잘 걸" 그런 후회로 사무쳤다.
     
    그러나 내가 반대의 선택을 했더라도 유의미한 차이는 없었을 것이다. 아이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조금 연장한 대가로, 내 마음의 위안을 약간 얻는 것뿐이었을 테니. 안락사 참관도 마찬가지다. 나는 참관 후 트라우마로 괴로웠지만, 참관하지 않았다면 마음속에 깊은 후회가 남았을 거다. 결국 반대의 선택 또한 내 마음속에 상처로 자리 잡았을 것이다. 결국 선택의 영역이다. 삶은 선택의 연속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아픈 노령견과 함께한다는 것.

    나이 먹은 강아지는 눈에 띄게 쇠약해져 간다. 강아지의 시간은 사람에 비해 매우 빠르게 흘러간다. 사람의 하루가 강아지에게 일주일과 같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보았다. 노령견은 사람의 도움 없이는 시간이 더 빠르게 흘러갈 수 있다. 관리 없이는 남은 시간마저도 줄어들 수 있다는 얘기다.

    어렸을 적 꼬뉴

    꼬뉴는 내가 중학교 2학년 때 아주 작은 새끼 강아지로 우리 가족에게 왔다. 그 후로 20년이 지났고, 수명은 평균보다는 오래 살았다 할 수 있다. 이 사실이 내게 조금은 위안이 되지만, 그럼에도 더 잘해주었더라면 지난 3년간의 고통이 조금이라도 줄어들진 않았을까 하는 죄책감이 있다.

     

    꼬뉴는 이미 3년 전부터 시력을 거의 상실했고, 청력도 마찬가지였다. 눈은 방안의 전등이 켜지고 꺼지는 명암 정도만 구분할 수 있었고, 귀는 바로 옆에서 소리치는 정도가 아니면 반응하지 못했다. 벽에 머리를 콩콩 부딪히거나 불러도 반응이 없는 것에 대한 안타까움은 있었지만, 강아지는 후각 의존도가 높기 때문에 생활이 불가능한 정도는 아니었다.

     

    문제는 그 이후에 뒷다리 양쪽을 잘 못쓰게 되면서부터였다. 그리고 그와 함께 뇌신경에 문제가 오기 시작했다. 한쪽으로 계속 도는 증상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초반에는 비틀거리면서도 혼자서 용변을 보았지만, 시간이 점차 지남에 따라 주저앉거나 넘어지는 횟수가 잦아졌고, 결국 용변을 보다가 그 자리에 주저앉아버리는 상황까지 오게 되었다.


    치료는 병의 악화를 막아주지 못한다.

    다리를 치료하기 위해 여러 동물병원을 다니며 피검사도 하고 CT, 초음파, 엑스레이도 찍었으며, 동물 한의원에 가서 약도 지어 먹였지만 병에 큰 차도를 보지 못했다. 수술로 치료가 가능하다면 시도해보고 싶었지만, 병원에서는 나이 때문에 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할 확률이 높다 했다. 내가 정말 슬펐던 것은 주변인들과 심지어 병원 의사들까지도 노령견이 아픈 것은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어쩔 수 없는 것이라는 순응적 태도를 보일 때였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치료비의 경제적 문제를 포함해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부분적으로 공감하고 있는 나 자신의 생각을 인지할 때.. 자괴감이 들곤 했다.

    늙어 아프기 시작한 꼬뉴

    2015년 내 결혼식 이후, 독립하면서 본가와 거리가 있었기 때문에 꼬냉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많지 못했다. 부모님 안부보다는 꼬뉴의 안부를 먼저 물을 정도로 불효자식이었던 나였다. 부모님 역시 꼬뉴에 대한 사랑이 지극하신 편이었지만, 나이가 들어 아픈 건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셨고, 병원에 다니는 것이나 각종 영양제를 먹이는 것, 수제 휠체어를 구입하는 것 등에 적극적이진 못하셨다.(그럼에도 아들 등쌀에 필요한 건 다 지원해주셨다.)
     

    초음파와 엑스레이, 혈액 검사 차트

    나는 할 수 있는 건 모두 시도해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건 꼬뉴를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나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녀석의 상태는 점점 악화되어갔다. 휠체어를 끌 힘도 없어진 꼬뉴는 치매인 것처럼 가족 중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고, 식욕과 밤 잠이 눈에 띄게 줄기 시작했다. 입 속은 말라갔으며 침 냄새가 매우 지독해졌다. 당연히도, 살이 급격히 빠지면서 앙상해지기 시작했다. 산책을 할 수 없음은 물론이었다.


    병든 노령견 간호는 중노동이다.

    용변을 보기 위한 거동을 할 수 없으므로 기저귀를 차야했고, 식사는 혼자 할 수 없어 누군가 먹여줘야 했다. 변의 경우 항문의 힘이 약해지면서 사람의 손으로 도와주지 않으면 배출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런 건 크게 힘들다 생각하지 않았다. 아예 힘들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정말 힘들었던 건 바로 신경 증상이었다.
     

    메모로 정리한 간호할 때 행동 요령

    한쪽으로 돌던 신경 증세가 거동이 안되어 누운 상태에선 머리와 허리를 한쪽으로 계속 들어 올리는 증세로 변화되었다. 그리고 그것을 끊임없이 반복하다 지치면 몇 시간 잠이 들었다가, 깨면 다시 반복하곤 하였다. 그리고 너무 불편하면 중간중간 짖는 것이 아닌 구슬픈 울음소리로 울곤 했고, 그럴 땐 반대 방향으로 눕혀주면 잠시 동안은 괜찮아졌다. 24시간 중 짧게 잠드는 시간 외 보살피는 이도 제대로 쉴 수 없는 힘든 시간이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나는 교대로 아이를 간호했었다. 물론 가장 힘든 건 꼬뉴였을것이다. 그 사실이 간호에 대한 힘듦보다 더욱 날 괴롭게 했다.


    노령견은 주인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후회되는 것, 해주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의 종류는 많지만, 그중 가장 후회되는 것이 하나 있다면 바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치료와 관리를 해주지 못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유는 경제적인 여건도 있었지만 어느 정도의 안일함도 내재되어 있었던 것 같다. 문제는 그 시기를 지나면 노령으로 인한 위험으로, 적극적 치료를 하기가 어려워진다는 것에 있다.
     

    사랑한다, 꼬뉴야.

    아이의 나이가 10살 전후가 되면 매년 정기검진은 꼭 받기를 권하며, 치석 제거를 이전에 한 경력이 있더라도 더 늦기 전에 다시 한번 해주는 것이 좋다. 안구 관련 질환도가 높은 시츄의 경우 안구 건강에 대해 각별히 신경 쓰는 것이 좋지만 이는 유전적인 요인이라 노령견이 되면 대부분 실명하게 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꾸준히 안약으로 관리하면 그 속도는 늦출 수 있다.
     
    노령견은 주인에 대한 의존도가 절대적이다. 물론 언급했다시피 후회 없는 반려견과의 이별이 어디 있겠느냐만, 이 글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어 필자보다는 적은 후회를 남기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2021년 01월 11일 내용추가

    비슷한 상황에서 힘든 분들에게 위안이 될 수 있는 영상을 보게 되어 링크를 첨부한다. 특히 안락사를 고민하는 상황에 있다면 꼭 끝까지 시청하면 좋겠다. 필자는 아직도 마음 한편에 죄책감과 슬픔이 남아 있었으나 이 영상을 보고 마음이 한결 나아진 것을 느꼈다. 꼭 시청해 보기를..

    https://youtu.be/WTcRsudhNv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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